9월, 2019의 게시물 표시

[전선112호] 노동전선 월례토론회 <교육(노동) 운동 방향 정립을 위하여> 후기

이미지
노동전선 월례토론회 <교육(노동) 운동 방향 정립을 위하여> 후기 노동전선은 지난 7월 12일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교육(노동) 운동 방향 정립을 위하여>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노동전선이 노동현안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주요한 쟁점의 하나인 교육문제까지 다루고자 하는 것은 단위 사업장의 개별 노자관계를 넘어서 사회구조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개입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육현장에서도 노자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특징인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교육현장에서도 첨예하게 나타난다. 토론회 최덕현(전교조 조합원) 발제자(이하 발제자)는 교육의 위기가 교육 현장에서 다음과 같은 원인들로 인하여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주로 평등하지 못한 교육, 가혹한 경쟁을 부르는 입시제도와 교원정책, 부의 대물림과 고착된 학벌 사회, 과밀 학급, 사교육비 부담, 인권과 교육권 침해, 시민적 권리에 대한 억압, 관료적 통제, 부족한 교육재정 등 국가의 왜곡된 교육정책이나 학교에서 발생하는 학교 구성원 간의 갈등,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교실과 학교가 위기의 원인으로 진단된다. 최근에는 저출산·고령화 경향이 학령기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그에 따른 교육재정 축소, 대학 구조조정,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 고용, 연금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어 유·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또 다른 위기가 조장되고 있다.” 그리고 교육현장의 문제는 단순히 교육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교육현장이 구체적으로 발을 딛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라는 것을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교육문제는 가치중립적일 수 없으며, 경제와 정치,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본질적 문제는 현재 교육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 교육의 본질적 문제라 할 억압, 불평등, 차별은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와 기능에 근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교육개혁은 자본주의를 지

[전선112호] 노동전선 월례토론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후기

이미지
노동전선 월례토론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후기 1. 들어가며 노동전선은 지난 7월 20일(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지난 쇠고기 파동과 최순실 게이트로 폭발된 촛불 항쟁에서 드러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갈등이 드러났다. 이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노동운동에 제기하였다. 이에 양자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토론회를 기획하였다. 특히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이후 각 부문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전성시대를 걸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노동운동이 시급히 한 번 쯤 다루어야 할 주제였다. 2. 노동운동에 대한 진단과 방향 먼저 김승호 발제자(이하 발제자)는 먼저 노동운동에 대해서부터 다음과 같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면서 포문을 연다. “명분상 전태일을 따르는 한국 노동운동은 지금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할까? 우리 노동운동은 왜 항상 고공농성을 해야만 할까? 왜 항상 열사를 만들어내야만 할까? 왜 장기 단식과 삼보일배와 오체투지 같은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할까? 그렇게 힘들여 투쟁해도 왜 시원하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왜 이겨 봐야 본전밖에 못되는 싸움을 되풀이할까?” 발제자는 지금 노동운동이 고공, 열사, 단식, 삼보일배, 오체투지 등의 처절하게 투쟁을 전개하고는 있는데 대중의 조직화와 정치의식의 고양이라는 측면에서 성과가 없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투쟁에만 매몰되어 있는 현실 노동운동을 개탄한다. 발제자는 이러한 전투적 조합주의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이렇게 계급적으로 단결하고 전투적으로 투쟁하는 조직력과 투쟁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답은 조직력과 투쟁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생각하면 분명하다. 의식성이다. 의식성이 약하면 필연적으로 조직력과 투쟁력이 떨어진다. 노동자대중의 의식을 목적의식적으로 높이지 않고 자연발생성

[전선112호] 한일'분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취해야할 총체적 태도는?

이미지
한일'분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취해야할 총체적 태도는? 일본이 촉발한 한국에 대한 “무역전쟁”이 뒤흔든 정치적 파장만큼 운동진영 내에서도 이에 대한 갖가지 분석과 대응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인식은 특히 노동자 계급이 주목해야 한다. “지금 일본과 한국의 경제전쟁은 자본주의 상호 간의 국지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와 그것을 좇아가는 남한 아제국주의 간의 전쟁, 노동자는 이 자본 상호 간의 전쟁에 자기 모국 자본을 위해 복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아니며 스스로 아제국주의로 나서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다. 독점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는 오히려 상호 간의 경제전쟁을 구실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려는 자국 독점자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일제 식민통치 시대가 아니다.”(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모순3”, 매일노동뉴스, 2019.08.12.) 운동진영 한편에서 이번 한·일간 분쟁을 “경제침략”이라 규정하여 그 ‘침략자’에 맞서기 위해 정권과 재벌의 이해에 동조하는 흐름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빌미로 규제완화 등 재벌의 “경쟁력 강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자국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적극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분쟁을 한·일간 국가 간 분쟁으로만 인식하고 자국 내부의 노동자·민중과 자본가·권력의 모순에 집중하지 못하면 결국 운동은 자주성과 계급성을 상실하고 자국 자본과 권력의 일방적 요구와 공세에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자주성의 문제를 (제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 국가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국내외 독점자본 및 국가 대 국내외 노동자 계급 및 민중의 모순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몰계급적 관점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위 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 시

[전선112호] 홍콩 시위에서 미국의 역할

이미지
홍콩 시위에서 미국의 역할 2019년 6월 30일 ‘Workers World’에 특별기사로 게재된 기사 번역문  기업 언론은 최근 홍콩에서 항의 시위를 이용해 인권 방어라는 구실 아래 중화 인민 공화국과 중국공산당의 지배적 역할을 공격하고 비난했습니다. 미국의 부자와 그들의 워싱턴 정부가 미국의 외교 정책을 수행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역사를 알지 못하면, 1842년 대영제국이 점령 하였고 1997년에 반환된 도시인 홍콩에서 이 항의의 배후 세력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제 행동 센터 (International Action Center)의 이 성명서는 이러한 문제를 다룹니다. 미국 제국주의는 존엄, 주권 및 완전한 인권을 갖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세계 인민들의 가장 큰 적입니다. 월스트리트와 금융 자본은 800 개가 넘는 외국 군대 기지, 항공 모함, 끊임없는 쿠데타, 표적 암살, 무인 항공기 공격 및 기아 제재 등의 위협을 통해 전 세계 30 개국 이상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합니다. 월스트리트는 또한 부드러운 힘, ‘민주주의을 위한 국가 기부’ (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를 사용하여 전 세계에 많은 수천개의 비정부기구, 반동적인 정당 및 부패한 독재자와의 제휴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원조와 개입은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결코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법 개정 제안에 대한 최근의 대중 시위가 홍콩을 동요시켰다. 모든 진보 진영이 대중 시위 진영에 집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더 깊게 보고, 운동의 배후에 어떤 힘이 있으며, 누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 혁명가들의 의무입니다. 배경 영국은 1842년 일차 아편 전쟁의 결과로 홍콩을 중국에서 훔쳤다. 아편 전쟁을 통해 영국과 미군 군대는 아편 무역, 불평등한 조약 및 점령을 부과했다. 백년의 제국주의 약탈은 중국을 완전히 빈곤하게 했고, 발전시키지 못했다.

[전선 112호] <서평>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와 『여성론』을 읽고.

이미지
< 서평 >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와 『여성론』을 읽고 . 천연옥 / 노동전선 부산회원 1. 글을 시작하며 전선 111 호 (2019 년 7 월 29 일 )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닌 남성과 여성의 투쟁의 역사로 바뀌어야 하는가 ? ”라는 제목의 글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만큼 이 사회에서 여성이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명에 기반한 여성해방의 침로를 정립하는 것은 변혁운동진영의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 ”고 하였다 .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필자에게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라는 요청을 하였다 .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 부족하지만 위의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 2.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 ( 김민재 , 이지완 , 황정규 지음 , 2019.6.10. 해방 ) 이 책은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이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 페미니즘은 여러 한계로 말미암아 올바른 여성해방의 지침이 아니라는 점을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과 대표적 이론가들의 대표도서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그 대안임을 주장하고 있다 .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2017 년 ~2018 년 매체 ❮ 사회주의자 ❯ 에 실렸던 기사들을 다듬은 것이고 , 저자들은 「사회주의자」의 기자 ( 김민재 , 이지완 ) 이고 , 편집국장 ( 황정규 ) 이다 . 저자들은 페미니즘은 그 다양한 조류에도 불구하고 “그냥 ‘여성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상’이 아니라 , ‘여성의 억압을 다른 모든 억압에 앞선 사회의 기본모순으로 바라보는 사상’ 이라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 아래에서는 책 내용을 순서대로 요약하였다 . 1 부 / 사회주의 ,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말하다 사회주의 즉 물질적 생산의 관점에서 관념론과 기계적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