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12호] <서평>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와 『여성론』을 읽고.

<서평>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와 『여성론』을 읽고.

천연옥/ 노동전선 부산회원




1. 글을 시작하며

전선 111(2019 7 29) “지금까지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가 아닌 남성과 여성의 투쟁의 역사로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만큼 이 사회에서 여성이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해명에 기반한 여성해방의 침로를 정립하는 것은 변혁운동진영의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에서 필자에게 두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라는 요청을 하였다.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부족하지만 위의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2.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김민재, 이지완, 황정규 지음, 2019.6.10. 해방)

이 책은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이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페미니즘은 여러 한계로 말미암아 올바른 여성해방의 지침이 아니라는 점을 페미니즘의 주요 개념과 대표적 이론가들의 대표도서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그 대안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2017~2018년 매체 사회주의자 실렸던 기사들을 다듬은 것이고, 저자들은 「사회주의자」의 기자(김민재, 이지완)이고, 편집국장(황정규)이다. 저자들은 페미니즘은 그 다양한 조류에도 불구하고 “그냥 ‘여성억압을 철폐하고자 하는 사상’이 아니라, ‘여성의 억압을 다른 모든 억압에 앞선 사회의 기본모순으로 바라보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아래에서는 책 내용을 순서대로 요약하였다.

1/사회주의, 여성의 억압과 해방을 말하다

사회주의 즉 물질적 생산의 관점에서 관념론과 기계적 유물론을 극복한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여성억압의 기원은 계급의 기원과 동일하다. 태초부터 여성이 남성에 종속되고 억압당했던 것이 아니라 원시공산제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이 평등했으며, 생산력의 발전에 의한 잉여생산물이 존재하게 되면서 계급이 발생하고, 평등했던 원시공산제 사회의 성별 노동분업은 계급이 발생하면서 여성억압으로 변질되었다. 여성억압과 계급억압은 같은 시기에 발생하여 서로를 강화시켰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했던 사회의 증거는 인류학의 성과로 증명되고 있다.(이 부분은 베벨의 여성론에서 반복되기에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계급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지배를 확립, 유지하기 위해서 여성억압을 적극 활용했고, 자본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자본주의의 발달한 생산력은 비숙련노동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가들의 무한한 이윤추구는 좀 더 높은 이윤을 위해 좀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여성을 사회적 노동으로 끌어들였다. 자본주의는 여성을 억압하는 동시에 생산력을 발전시켜 여성이 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도 했다. 의학을 발전시켜 임신과 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 하였고, 기계의 발달은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이고 사회적 생산참여에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여전히 여성억압에 기반을 둔 체제이다.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가정주부로서, 노동자로서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또한 여성이 참여하는 노동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으로 남성보다 지위가 낮고,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생산력의 발달로 차별적인 성별분업이 사라져야 하지만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라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차별적 성별분업을 유지시키고 있다. 그래서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 여성해방은 사회주의적 전망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1부 마지막에서 3·8여성의 날의 역사가 사회주의의 역사였음을, 여성의 날의 유래와 로자 룩셈부르크, 클라라 체트킨, 콜론타이 등의 실천을 통해 알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러시아 2월 혁명(차르체제의 러시아에서는 중세의 ‘율리우스’력을 사용했다. 이는 대부분이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에 비해 13일이 느리다. 그러므로 3 8일은 구력에서 2 23일이다. 이 때문에 1917 3월의 혁명을 ‘2월혁명’이라고 부르며, 1917 11월의 혁명을 ‘10월혁명’이라고 부른다)은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의 3·8 투쟁으로 촉발되었다는 것도 함께.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노동전선 회원인 서의윤 번역, 도서출판 좁쌀한알 콜론타이의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여성의 날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기관지 정세와노동152-2019 6월호-에 실린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정호영 해제, 서의윤 번역-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2/페미니즘 개념을 비판하다

페미니스트들이 사용하는 개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먼저 ‘가부장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특정한 가족구조를 지칭하는 인류학적 개념이었으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개별가족 구성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연소자와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를 지지하고 구조화하는 체제’로 정의된다. 맑스는 ‘가족을 이끄는 남성이 생산을 지휘 통제하는 특정한 생산방식’으로 가부장제 개념을 사용하였고,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농민가구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언급하였다. ‘가부장제’는 196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핵심 개념으로 처음 등장했다. 그들은 인류역사 전체를 통틀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 왔으며, 이것이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여 남성에 맞서 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 이론가로서 1970년에 『성 정치학』을 쓴 케이트 밀렛(1934~2017)은 가부장제를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연장자 남성이 연소자 남성을 지배하는 원리에 따라 조직된 사회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1979년에 『성의 변증법』을 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1945~2012)은 이러한 가부장제의 기원과 토대에 대해서 여성과 남성 간 생물학적 차이 즉 여성의 임신과 출산 가능성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의 임신 출산 가능성이란 생물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여성을 종속시켰다는 것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이란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결국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개념을 통해 여성억압의 보편성과 독자성을 주장하려 했지만, 이러한 초역사적 접근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고, 여성억압의 기원과 물적토대를 올바르게 규명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로 성별임금격차와 성별 직종분리라는 자본주의적 현상에 대해 가족임금과 보호입법, 숙련노조에서의 여성배제로 여성의 임금노동 참여가 제한되고, ‘남성생계부양자모델’이 확립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보호입법이 여성노동자를 일터에서 쫓아내고, 숙련노조는 여성을 배제하고, 아내의 가사노동이 노동력 재생산비용을 줄여 자본가에게 이득을 주고, 자본가와 남성노동자가 공모하여 여성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정체성 정치’는 성별, 종교, 인종 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나뉜 집단이 각 집단의 권리를 요구하는데 주력하는 정치, 미국의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 운동의 특징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개념이다. 이 담론은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상실하면서 점차 체제순응적인 온건한 정치가 되었다.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찾기 보다는 ‘인종적, 젠더적 위계’로 인한 ‘불공정한 분배 시스템’에서 찾는다.

네 번째 1989킴벌리 크렌쇼라는 흑인 페미니스트 법학자가 법적인 차별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처음 쓴 ‘상호교차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같은 억압을 겪는 것이 아니며, 여성억압, 인종적 억압, 계급적 억압 등 여러 억압의 교차점에 놓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정체성 정치에 비하면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여러 억압들을 기계적으로 결합시킬 뿐 억압을 인식하는 총체적 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억압들에 대한 기계적 병렬과 다원론으로 귀결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여성억압과 계급억압을 결합시키기 위해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개념을 받아들여 자본주의와 나란히 병렬시켰다. 그리고는 자본주의가 생산양식이라면 ‘가부장제’는 ‘재생산’양식이고, 전자가 계급억압의 장소라면 후자는 여성억압의 장소이므로, 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사회주의 혁명과 가부장제를 타파하는 혁명이 둘 다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두 개의 독립된 서로 다른 억압구조를 이론화했기 때문에 ‘이원론’이라고 불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원론은 한계를 드러내어 두 개의 결합은 기계적 결합에 머물러 이론과 실천이 전개되어 갈수록 양자가 서로 분리되는 역설이 발생했다. 여러 억압에 대한 총체적·통일적 설명을 꺼리며 ‘모든 억압이 다 중요하다’는 식에 머무르는 것은 이론에서 뿐 아니라 실천에서도 한계가 나타났다. 여러 억압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총체적 이론틀을 모색해야 올바르고 효과적인 실천을 할 수 있으며, 그 이론틀은 맑스주의이다.

다섯 번째로 ‘사회재생산’ 개념이다. 앞의 네 가지 개념은 페미니즘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은 맑스주의 내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196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이 등장한 이후 맑스주의 혹은 사회주의 운동진영 내에서도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수용하여 여성억압 문제를 설명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이 흐름이 ‘사회주의 페미니즘’(혹은 맑수주의 페미니즘)이다. 사회재생산 이론은 여성억압을 설명하는 동시에 여성문제와 계급문제를 통합하는 단일이론을 제공한다. 상호교차성이론에서 설명했던 대로 이들이 이원론을 선택한 이유는 맑스주의가 여성억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급문제는 맑스주의로, 여성억압은 페미니즘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본주의/가부장제, 생산양식/재생산양식, 자본주의 생산양식/가내생산양식, 계급체제/젠더체제 등의 다양한 이원론이 등장했다. 과거의 이원론을 극복했다는 최신 사회재생산 이론가들은 맑스주의가 ‘상품생산’, ‘자본주의생산’ 혹은 ‘생산’이나 ‘시장’에 대해서만 다루고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력들이 어떻게 ‘재생산’ 되는 지는 공백으로 남겨두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초기 사회재생산 이론과 달라진 것도 없으면서 맑스주의를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억압을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지어 설명함으로써 노동계급 이외의 다른 계급에서 일어나는 여성억압과 자본주의 이외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성억압을 설명할 수 없다. 엥겔스 이후 인류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인류역사에서 계급의 등장뿐 아니라 여성억압의 등장도 생산의 변천 속에서 설명될 수 있고, 이 점이 설명된 후에야 자본주의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의 특수한 성격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다.

3/페미니즘 책을 비판하다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13년 개정증보판 출간), 정희진이 쓴 이 책은 페미니즘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14쇄를 찍었고, 2014년에서 2018년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으며(교보문고 기준), 한국 페미니즘의 교과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성의 전화’에서 5년간 상근자로 활동한 저자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와 같은 ‘상식’이라는 이름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날카로운 지적은 젠더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우리가 딛고 서있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음을 폭로하며 지배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언어와 물질의 분리는 남성 중심적 사유이다. 운동과 언어사이의 이원론, 위계적 사고는 “이제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앞으로 철학은 세계를 변혁시켜야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테제를 수용한 결과다”라는 지점에서 멈춘다. 세계를 해석하되 변혁하려고 하지 마라, 변혁하려고 하는 것은 남성중심적 사유이며, 그래서 맑스주의는 틀렸다고 주장한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2012)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 2017 7 25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서울에 강연회를 열었을 때 무려 400명의 청중이 참석했다고 하고, 이책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교보문고 기준)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2015년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는 여성혐오 담론이 우에노 치즈코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저자가 말하는 ‘여성혐오’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닌 남성이 쟁취해야 하는 일종의 트로피처럼 보는 이데올로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당연히 적대적 성차별주의(여성멸시)와 온정적 성차별주의(여성숭배) 모두를 포함하며, 여성억압 전체를 느슨하게 묶어서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책은 분석대상을 처음부터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한정하고 있어서 극복하는 방법도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한정하고 있다. 우에노 치즈코가 정의한 여성혐오는 ‘여성억압 이데올로기 전체’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혐오’를 그보다 더 넓게 ‘여성억압 전체, 성차별 전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혐오로 지칭되어 온 현상의 뿌리가 물적인 토대, 즉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면, 사람들에게 여성혐오 사고를 바꾸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사회에서 일베 세력에 의한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언어적, 물리적 폭력 등의 적대적 성차별에 한정해서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그 외의 행위에 대해서는 성차별, 온정적 성차별이라고 칭하는 것이 좋겠다. ‘혐오’와 달리 ‘차별’은 특정한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을 상기시키며, 구체적인 사람, 추상적 사회구조 모두 주어로 나올 수 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갈무리, 2014)마리아 미즈 1986년에 처음 출간, 1998년에 개정판이 나오고, 2014년에 한국에서 출간된 페미니즘의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지지자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으나, 이 책의 주장은 생산관계 속에서의 착취를 경시하고, 생산관계 외부의 약탈만으로 여성억압의 기원과 양상을 설명하고, 남성노동자들도 여성억압에 대해 물질적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자본주의와 동등한 위상의 ‘가부장제’개념을 설정하는 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 가부장제’는 약탈이며, 남성의 폭력과 약탈이 여성억압의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계급 남성이 여성을 ‘가정주부화’함으로써 첫 번째로 일자리를 독점할 수 있고 두 번째로 “가족 내 모든 현금소득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할 수 있으므로 물질적 이해관계가 있다고 한다. 미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여성이 겪는 물질적 억압에 집중하면서 유물론적 분석을 시도하지만, 물질적 생산이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부정하다보니 착취가 아니라 ‘약탈’을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남성이 여성과 식민지를 ‘약탈’할 물질적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잘못된 분석을 한다. 그 귀결은 변혁 전략에서 서구 여성의 역할을 소비자운동으로 제한하고, 3세계 여성에 대해서도 여남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아닌 토지 및 자급적 생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라는 불분명한 방식을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는 자본주의 이후의 대안적 전망을 사회주의가 아닌 자급자족 경제를 제시하는데,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말했던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와 유사해 보인다.

『캘리번과 마녀』(갈무리, 2011)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진 실비아 페데리치의 대표저작이다. 이 책은 대학 내 진보적 학술 동아리들도 권장도서로 받아들이고 있고, 여성학 강좌에서도 빠지지 않고 추천도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만큼 페데리치는 194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음에도 한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들은 맑스주의의 확장이 아니라 무지와 왜곡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맑스)가 남성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서, 그리고 상품생산의 발달과정의 관점에서 시초축척을 검토했다면, 나는 시초축적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가져온 변화의 관점에서, 그리고 노동력 생산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다룬다”며, 페데로치는 시초축적을 “봉건적 반동”이나 “재판농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형성되기 위한 전제로서 생산수단과 직접생산자의 분리과정, 즉 토지로부터 농민을 분리하여 생존하기 위해서 노동력을 판매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과정을 시초축적이라고 설명한다. 페데리치의 자의적 용어확장은 중세부터 프롤레타리아트는 존재했으며, 자본주의는 중세 프롤레타리아트의 반봉건투쟁에 대한 중세 지배계급의 반혁명이었고, 여성의 종속도 이런 반혁명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의 성적 분업, 생산과 재생산의 분리는 여성을 출산기계 취급하고, 임금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 가정에서 부불노동을 하는 그들의 기능적 상황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고, 이로써 새로운 가부장제 질서인 ‘임금 가부장제’가 수립되었다. 남성은 이 과정에서 공모자인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페데리치의 이런 주장의 이론적 뿌리는 자신이 속한 이탈리아 자율주의 그룹이다. 페데리치와 몇몇 사람들은 1970년대 ‘가사노동 논쟁’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페데리치는 여성의 종속을 설명하면서 봉건제를 미화하고 자본주의 여성종속을 과장하면서 ‘봉건귀족없는 봉건제’를 이상적인 사회로 본다. 이것은 맑스가 프루동에 대해서 “교황없는 가톨릭”을 꿈꾼다고 비판했는데, 페데리치도 같은 오류에 빠진 것이다.

3. 『여성론』(아우구스트 베벨 지음, 이순예 옮김, 까치, 1990)

이 책은 리프크네이트와 함께 1867년 독일의 사회민주노동당을 창당한 아우구스트 베벨(1840~1913)이 비스마르크의 사회주의자 탄압법(1878~1890)의 서슬아래서 1879년 초판이 발행되었다. 그 때 180쪽의 소책자였으나, 1910년까지 50여 차례 개정, 증보하여 400쪽이 넘는 분량으로 변모하였고, 전세계 53개 언어로 번역될 만큼 맑스주의의 고전이며 여성운동론의 고전이다. 원제는 『여성과 사회주의』였으나, 정치·사상의 자유가 부족한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1987 4월에 초판을 발행하면서 일본의 번역 제목인 『부인론』에서 여성문제를 결혼한 여성만의 문제로 보이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여성론’이라고 붙여, 4부 사회주의 사회의 전망을 담은 부분을 빼고 1~3부만 출판하였다. 완역본은 6월 항쟁 이후 90년에 발행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원시공산제 사회에 대한 서술과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맑스주의적 서술은 미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1818~1881)의 『고대사회』(1877)를 토대로 쓴,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에 최초로 정리되었다. 베벨은 초판에는 엥겔스의 책을 보지 못했으나 이후엔 엥겔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설명하고 있다. 모건과 엥겔스가 인류의 역사를 특정한 성의 입장에서 서술하지 않은 것에 비해, 베벨은 『여성과 사회주의』를 통하여 여성의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고, 사회주의를 전망했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해방이고,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이 책의 제 1부는 원시사회의 여성의 지위, 원시공산제 사회의 가족형태와 모권에 대해서 설명하고, 생산력 발전에 의한 재산소유자가 등장하면서 상속을 둘러싸고 모권과 부권은 투쟁, 국가의 발생, 기독교, 중세의 여성, 봉건제도와 초야권, 도시의 번영과 수도원과 매춘, 기사도와 여성숭배, 종교개혁, 18세기의 프랑스 혁명과 대공업까지를 개괄한다. 이순예는 역자후기에서 “저자는 여성억압의 기원이 원시사회 말기에 발생한 생산수단의 사유화에서 찾으며, 사회구성단계가 이행될 때 마다 여성의 지위는 변화된 경제적, 사회적 관계의 결과라고 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광범위한 자료-인류학적 발견, 통계, 각 분야 학자들의 연구결과 등 –를 동원하여 자신의 진술을 빈틈없이 뒷받침함으로써 우리들을 강력하게 설득한다”고 쓰고 있다. 2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이 사실은 여성억압과 관련 있음을 밝히면서 현대의 결혼, 가족의 붕괴, 생활수단으로서의 결혼, 매춘과 인신매매를 다룬다. 여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됨으로서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출되고 있음을 당시의 현실에서 설명한다. 여성도 동등하게 교육받아야 하며, 법률상에서도 평등해야 하고, 여성참정권운동을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도록 고무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3부에서는 계급국가와 현대 프롤레타이아, 계급대립의 첨예화, 자본주의적 공업의 발전과 부의 집중, 공황과 경쟁, 농업혁명을 다루고 있다. 3부는 당시 독일의 경제적 상황을 설명한 교양경제학 같은 부분이다. 4부는 사회혁명과 사회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들, 사회주의와 농업, 국가의 소멸, 종교의 앞날, 사회주의 교육제도, 개성의 자유로운 신장, 미래의 여성, 국제관계, 인구문제와 사회주의를 다루고 있다. 특히 ‘미래의 여성’에서 베벨은 “새로운 사회의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기만적 지배와 착취에 예속되지 않으며 남성에 대해서 자유롭고 남성과 동등하다. 이제 여성은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된다. 교육도 남성과 똑같이 받는다. 단 성과 성적 기능의 차이에 따라 분리교육이 꼭 필요한 경우 예외를 둘 수 있다. 제반 생활조건이 자연원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직되어 있으므로 여성도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마음껏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의 희망과 소질 성향을 고려해 선택한 활동분야에서 남성과 동일한 조건에서 일한다.....사랑의 문제에서도 남녀는 똑같이 자유로우며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다. 애정이외의 다른 조건으로 상대방과 결합하는 일은 없다.또 이러한 결합은 전적으로 사적인 계약으로 관계공무원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여성의 완전한 해방과 남녀평등권 획득은 우리 문화가 목표로 하는 발전과제 중 하나이다. 자상의 어떤 권력도 이의 실현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자본가의 노동자 지배-를 종결지을 일대 변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면 드디어 인류는 최고의 자기 발전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인간이 수천 년 전부터 꿈꾸고 갈망해왔던 ”황금시대“가 마침내 도래하는 것이다. 계급지배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이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라고 쓰고 있다.

4. 글을 마치며

「노동자연대」 294(2019 8 1)에 정진희가 쓴 『페미니즘인가 여성해방인가-사회주의에서 답을 찾다』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대체로 동의가 되는 글이었다. 그러나 정진희가 「진보평론」 (2015 9월호)에 쓴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최근 쟁점들>이란 글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1920년대 말이 되면 혁명 자체가 아예 역전됐다.1920년대 초에 부상한 관료집단은 1928-29, 일부 남아있던 혁명의 성과를 모조리 파괴하는 반혁명을 추진했다. 여성의 지위도 역전됐다. 반혁명이후 스탈린주의 관료는 서방 자본주의와 경쟁하면서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군사적 필요를 위해 강박적 축적을 해야 하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했다. 흔한 오해와 달리, 옛 소련에서 나타난 여성억압은 사회주의가 돼도 여성차별은 계속된다는 것을 입증한 게 아니다. 오히려 노동계급 혁명이 패배하면 어떻게 여성들의 지위가 역전되고 차별이 지속되는지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인 것이다”
결국 사회주의를 말하는데, 다른 사회주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해방의 이론을 사회주의에서 찾자고 하는데, 어떤 사회주의인가? 뜨로츠키주의에서 바라보는 사회주의, 특히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필자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현실사회주의에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달라졌는가는 역사적 사실이다. 바만 아자드의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사회주의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에서 사회주의의 성과를 열거하면서 여성의 평등권이 얼마나 진진되었는지 여러 통계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현실사회주의는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로서의 사회주의이며 국가권력의 본질은 프롤레타라아 독재였다. 다수의 노동자·농민이 소수의 반혁명세력을 계급적으로 지배하는 계급사회였다. 당연히 여성의 완전한 평등은 계급이 존재하는 만큼 남아 있었을 것이다. 베벨이 말한 것처럼 “계급지배가 영원히 자취를 감추고 이와 더불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주요선진국에서도 여성참정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았으나 쏘련은 3 8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국가와 반혁명세력에 둘러싸여 제국주의 국가 중에서 가장 후진국이었던 러시아가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를 대공황으로 몰아넣었던 1930년대에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남녀평등을 위해 여러 정책들을 실행했던 현실 사회주의, 20세기 사회주의가 현재 해체되었다고 그들이 힘들게 진행했던 영웅적 투쟁을 쓰레기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제국주의세력들이 쏘련과 스탈린을 악마화한 역사에 대해 마리오 소사는 『진실이 밝혀지다-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에서 조작된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쏘련 붕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인류의 소중한 경험으로 배우고 앞으로 노동자계급이 어떤 사회를 위해 싸워야 할지 찾아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해방이고, 사회주의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은 옳다. 그러나 어떤 사회주의인가?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조작된 역사로 20세기 사회주의를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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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로자 룩셈부르크, 서의윤 옮김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성론」 정세와 노동 152
마리오 소사, 채만수 옮김 『진실이 밝혀지다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노사과연
바만 아자드, 채만수 옮김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사회주의국가 쏘련을 해체시킨 요인들』 노사과연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서의윤 옮김 『콜론타이의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세계여성이 날』 좁쌀한알
정진희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최근 쟁점들」 진보평론」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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