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12호] 한일'분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취해야할 총체적 태도는?

한일'분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취해야할 총체적 태도는?


일본이 촉발한 한국에 대한 “무역전쟁”이 뒤흔든 정치적 파장만큼 운동진영 내에서도 이에 대한 갖가지 분석과 대응이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인식은 특히 노동자 계급이 주목해야 한다.

“지금 일본과 한국의 경제전쟁은 자본주의 상호 간의 국지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와 그것을 좇아가는 남한 아제국주의 간의 전쟁, 노동자는 이 자본 상호 간의 전쟁에 자기 모국 자본을 위해 복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아니며 스스로 아제국주의로 나서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다. 독점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는 오히려 상호 간의 경제전쟁을 구실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려는 자국 독점자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일제 식민통치 시대가 아니다.”(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모순3”, 매일노동뉴스, 2019.08.12.)

운동진영 한편에서 이번 한·일간 분쟁을 “경제침략”이라 규정하여 그 ‘침략자’에 맞서기 위해 정권과 재벌의 이해에 동조하는 흐름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일본과의 무역전쟁을 빌미로 규제완화 등 재벌의 “경쟁력 강화”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자국 노동자 민중에 대한 적극적 공세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분쟁을 한·일간 국가 간 분쟁으로만 인식하고 자국 내부의 노동자·민중과 자본가·권력의 모순에 집중하지 못하면 결국 운동은 자주성과 계급성을 상실하고 자국 자본과 권력의 일방적 요구와 공세에 꼼짝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다. 자주성의 문제를 (제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 국가의 문제로만 인식하고, 국내외 독점자본 및 국가 대 국내외 노동자 계급 및 민중의 모순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몰계급적 관점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위 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이 아니다. 지금은 재벌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독점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했다. 기술종속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한국 독점자본의 독자적 발전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한일 간에는 식민지 시절의 역사적 경험이 남아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경험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독점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변화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당시의 역사적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은 일제 식민통치 시대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사태를 “자본주의 상호 간의 국지적 헤게모니 쟁탈전”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사물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일면적이고 총체적이지 못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남긴 역사적 문제

이번 “한·일 분쟁”에서 있어서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적 문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주지하듯, 이번 한·일 분쟁은 직접적으로 일제의 조선인에 대한 강제징용과 이 강제징용을 개인 배상하라는 한국법원의 판결로부터 발단이 됐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사과와 배상문제 역시 역사적 문제로 지금까지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역사적 문제를 둘러싸고 역사해석에 대한 논란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 조선이 근대화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 내 우익이나 한국 내 이영훈 교수 같은 극우 뉴라이트에 의해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를 찬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유하 교수처럼,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는 역사 논란 역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제가 자행한 여성에 대한 전대미문의 끔찍한 전쟁범죄가 이처럼 아직도 왜곡, 미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역사적 문제가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일상적인 종북몰이, 인권말살과 함께 재일조선인 차별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역사적 문제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를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아베 정권은 만 3∼5세 아이들의 유치원·보육원 무상화 조치 대상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계 교육시설을 제외키로 하는 비열한 책략으로 조선인 차별과 말살 정책에 나서고 있다.

역사적 문제는 그 역사적 문제가 발단이 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제에 의한 제국주의 지배와 해방 이후 미제국주의 군대의 주둔과 한국전쟁... 이러한 역사적 문제와 함께 현대사에 있어서 징용자 배상 등 한일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경제개발 자금과 기술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한일회담에 나섰다. 이에 대해 굴욕적인 한일협정비준반대 투쟁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군대까지 동원하여 위수령까지 발동해가면서 이 투쟁을 짓밟고 마침내 1965년 2월 15일 한일기본조약에 합의했다. 이 협정은 ‘어업’, ‘청구권’, ‘재일한인의 법적 지위’ 등 3개 현안을 일괄 타결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배상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일단락 했다. 박정희가 당시 6,600만 달러(현재 시세로는 30조원)의 정치자금을 일본으로부터 받고 굴욕적이고 반민족적 합의를 했던 사실이 폭로된 바가 있다.

일제는 이로써 일제의 식민지 지배 문제는 이것으로 일단락되었다면서 역사적 범죄에 대한 사죄를 외면하고 다시 역사왜곡과 함께 군국주의 전쟁책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강제징용 등 식민지 배상의 문제는 개인 배상의 여부로만 쟁점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일 간 역사적 문제는 한미일의 문제이자 한미의 문제기도 하다. 한미일 동맹, 한미은 본질적으로 반북공산주의 동맹으로, 반중동맹이자 반러 동맹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한일협정의 배후에는 샌프란시스코 협정이 있다. 한일협정 제 2 조에는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일본은 1951년 9월 한국전쟁 중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과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정을 체결했는데, 이 협정에 참여한 소련 협상단은 조약에 '일본의 군대창설을 막을 장치가 없다는 점, 사회주의 중국이 일본 침략의 주요 피해자임에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 조약에서 일본을 미군 기지로 삼았다는 점, 일본을 소련에 대항할 미군의 연합국으로 삼았다는 점, 조약이 별개의 평화조약이라는 점, 조약이 타이완과 여러 섬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점, 미국이 적법한 영유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미국에 일본의 여러 섬을 인정했다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조약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 협정은 주최국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52개국 중 체코슬로바키아, 소련, 폴란드를 제외한 49개국이 서명하는 것으로 발효됐다. 이 협정 체결이 있는 날 동시에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했다.

이 협정으로 미국무부는 청구권을 포기했다고 하여 일본군 포로로 붙잡혔던 미국인 강제노동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가로막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법원에서의 개인 청구권 결정으로 인해 샌프란시스코 협정에서 체결한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이 흔들릴 것으로 보고 기본적으로 일본 편을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협정은 명목적으로는 태평양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체결된 것이었다. 미국의 궁극적인 전략은 일본을 하위 동맹자로 내세워 동북아에서 공산주의를 견제,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반공주의 동맹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한국이었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한일군사정보협정(지소미아)는 바로 이 한미일 반공주의 전쟁 동맹을 기초로 하여 체결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격화되자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을 종료한다고 했는데, 이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 협정을 근간으로 한 ‘미일안보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같은 반민중적, 반민족적, 반평화적인 전쟁동맹의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일군사정보협정이 종료되더라도 이전에 체결했던 한미일 정보공유약정(티사TISA)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하고 있으며 이 협정 연장 거부의 대가로 이란 파병이나 주한미군주둔비 추가 분담, 한미연합훈련 비용 추가 분담, 미국의 군사무기 추가 수입 등을 제공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와 함께 이처럼 여전히 일본 제국주의 지배의 후과인 역사적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독점자본주의 발전이라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변화된 상태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한일분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에게 자행되는 공세에 맞서 싸우는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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