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104호] 번역기사 - 미국 빈곤문제 해결에 대한 공동체변화센터의 주장

빈곤문제해결에 대한 미국 시민단체의 주장


[전선104호]에서는 미국의 시민단체인 공동체변화센터의 활동가 딥팩 바르가바 (Deepak Bhargava)의 연설문을 번역 소개 합니다.

  공동체변화센터는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로서 196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해당 단체는 저소득층 스스로 권력과 역량을 구축하여 지역 사회와 공공 정책을 개선하는 사회운동을 이끌어 나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공동체변화센터가 주장하는 사회운동의 실행 전략은 현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의 원형에 가깝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인상에서 보았듯이 계급간 이해가 대립되는 정책의 실행은 그 과정에서 최초에 그것이 무엇을 목적으로 한것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 되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론의 원형에 대해 알아 보는 것은 노동자들이 '문재인 정부에게 왜 기대를 가졌는지'에 대한 탐구이자 기대 심리에 포섭되지 않는 노동운동의 전략적 선택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이것이 이 글을 번역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이 단체가 주장하는 최저임금인상과 정부주도 공공분야 투자와 신산업분야 성장을 기반으로 한 공정성장론은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신자유주의 정책의 파탄과 함께 자본주의 내의 새로운 개량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명확합니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현 사회내에서 친노동자적 경제 정책을 실현 할 만큼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노예적 상태로 착취해 온 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사회변혁적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고 왜 개량적이며 타협적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못합니다. 

 계급투쟁을 자신들이 내 건 사회적 목표 달성을 위한 힘으로 이용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아닌 살만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이상적 타협주의자들이 역사에서 실질적 진보를 이룬 적은 없습니다. 두 번이나 집권한 민주 정부가 집권 후 반노동자 친재벌 정부로 쉽게 변했던 역사적 사실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이 40년대, 50년대와 90년대에 완전고용을(자본주의 경제학에서는 실업율 4%를 완전고용 상태로 주장한다.) 달성한 경험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가 현실 가능한 것으로 주장 하고 있습니다. 해당 시기에 미국이 낮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풍요로운 중산층의 시대 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중산층의 시대를 가능하게 만들었던 주요한 원인은 2차세계대전의 승리, 자본주의 공황과 회복, 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수탈이었음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이 단체가 가지고 있는 입장의 한계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미국의 빈곤문제에 관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14년 6월 24일 공동체 변화센터 홈페이지 게재 기사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우리는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났던 적이 없습니다.

워싱턴디씨를 떠나면서 문득 어떤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워싱턴디씨에서 아스펜까지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항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여성, 화장실을 청소하는 관리인,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제 짐을 실었던 수화물운반원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내가 공항을 떠나고 한참 후에야 그들은 가족과 나이든 부모님들이 있는 가정으로 가거나 또는 두 번째 일을 하기 위해서 퇴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런 생각이 빠르고 선명하게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제 여행은 그들 삶의 한 부분입니다. 문자 그대로 그들의 노동은 나를 이곳에 데려다 준 엔진에 연료를 주입했습니다. 또한 이는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경제는 그들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엔진이 강력해지고 경제가 하나의 국가로서 보다 강력해질 수 있도록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경제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연료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연료는 공정함을 가진 좋은 일자리들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임금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연료를 찾아낼 수 있고 새롭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요?

로버트 데이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일 년 전에 로버트가 워싱턴디씨에 있는 포트벨리(편집자주: 포트벨리는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중적인 레스토랑으로서 대표메뉴로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레스토랑 체인이다. 나스닥 상장회사이며 미국 내 고용노동자는 7000명이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시간당 8달러(편집자주: 환율 1100원 기준8800원)를 받았습니다. 2014년 지금은 시급이 9.75달러까지 올라갔지만 그러나 다른 혜택은 여전히 없는 상태이다. 제가 지난해에 로버트를 만났을 때 그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했으나 시급 9.75달러로는 부족합니다. 임대료, 음식 우유, 화장지, 전기, 난방, 비용들을 지출해야만 합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이며 기본적인 청구서를 지불하게 해주는 좋은 일자리를 가치 있게 여기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내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빈곤임금 (편집자주: 시간당 임금이 한 나라에서 생존을 위한 생필품을 구매 할 수 있는 정도이거나 그 이하인 경우를 의미한다.)과 상여금도 없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지난 해 심지어는 회사가 실적악화를 겪었을지라도 경영자인 아일윈 루이스는 시간당 1000달러 이상을 지급 받아서 지난해 보다 두 배 많은 230만 달러를 챙겼습니다. 로버트는 시급 1000달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더 많이 지불 받아야 할 가치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간당 9.75달러로는 그의 어린 아들을 부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버트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로버트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에 나서고 시급 15달러를 위한 투쟁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그와 함께 임금인상 투쟁에 나서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투쟁은 로버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동일한 처지임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우리가 빈곤임금이 불러온 위기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평가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1억6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는 직장에 갈수 있게 차를 고치는 것과 월세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 사이에서 매우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로버트와 그의 어린 자식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1/3에 이릅니다.

이것은 연방정부가 설정한 끔찍하고 불공평한 빈곤선 아래에 처한 4백 7십만 명의 공식적 빈곤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5백 9십만 명은 빈곤선 끄트머리에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4인 가족이 얻고자 하는 약 4만 5천 달러의 수입을 남자,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러한 처지에서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미국에서 누구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로버트와 같은 상황들을 보면서 보다 강력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내 일생의 대부분을 그러한 일에 집중해 왔습니다. 주류 자유주의자들은 빈곤과 싸우기 위해서 공적 투자를 보다 많이 늘리자는 매해 똑같은 투쟁을 했었습니다.
한편,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적 책임과 자유시장을 해결책으로 조장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 나라의 부유층들은 더 부유해졌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 특히 여성과 유색인종 -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적은 보수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우리가 진전을 이루는데 실패해오지만은 않았지만 우리가 논쟁의 근거를 상실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60년대 이래로 우리가 해왔던 주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의 부실한 논쟁들을 가지고서는 이 나라에서 빈곤에 대한 실질적 진보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불일치하는 것보다 일치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논쟁이 획기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잘못된 가정들을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업이나 기업가에 의해서 이 나라의 부가 창출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해결책을 향해 계속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나라의 부는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된 노동은 모든 회사의 강력한 수익보고서 뒤에 숨겨진 성공의 비결입니다. 이사회를 만족시키는 모든 병원의 최고경영자들을 위해서 야간 교대근무로 병원 침대칸을 비우고 시트들을 갈아주는 수천 명의 간호조무사들이 있습니다. 간호조무사들의 노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병원의 경영체제는 붕괴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벌어야 하는 수입을 얻기 위해서 하루에 얼마나 힘들게 노동을 하는지는 상관없이 더 어렵고 힘들어만 집니다.

일단 그것을 깨닫게 되면 정부지원만으로 빈곤을 개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나는 전적으로 우리의 사회적 안전망을 지지하며 감사하게 여깁니다. 사회적 안전망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보수주의자들이 개인적 책임이라고 지칭하거나 자유주의자들이 불충분한 직업교육이라고 말하는, 개인적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 입니다. 우리는 게임의 규칙을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국가의 경제적 기초에 대한 기여도에 비례해서 사람들의 노동 가치를 중시해야 합니다.

밋롬니의 메이커스대 테이거스(편집자주: 생산자 대 거저먹는 자들)에 관한 발언은 기본적으로는 옳습니다. 단지 그는 악당과 영웅을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빈곤위기에 대해 급진적인 행동을 방해해 온 진부한 논쟁을 계속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대부분의 보수주의자와 심지어는 몇몇 자유주의자조차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만약 우리가 노동시장 구조를 변경시키기 위한 대담한 정책을 제안한다면 우리는 번영의 기초를 훼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편집자주: 밋롬니는 미국의 기업인이자 공화당 정치인이다. 2012년에는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경쟁 낙선했다. – 전국득표율 오바마 51.2% 롬니 47.2% - 대선 기간 중 밋롬니는 "47%의 미국인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보건의료, 주택, 음식을 정부에 의존하기 때문에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꾸리지 못하는 '거저먹는 자들'"이란 비공개 연설내용이 알려져 큰 논란을 일으켰다. 러닝메이트인 폴 라이언도 TV에서. "이제 미국인의 60퍼센트 가량은 현금 가치로 따졌을 때 납부하는 세금보다 더 많은 혜택을 연방정부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과반수의 거저먹는 자들(테이커스)과 나머지 만드는 자들(메이커스)로 나뉜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세금의 존재 이유와 사회 공동체의 윤리에 대해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는 미국 주류 보수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빈곤층, 노동 대중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발언이자 미국 내 계급분화적인 양상이 얼마나 심화되어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

보수주의자들은 높은 수준의 불공평이 활기찬 경제 성장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라며 공평함과 번영 사이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우리가 경제의 기본 구조를 인정해야만 하며 보다 관용적인 정부 정책들을 가지고서 경제가 만들어 낸 가혹한 결과들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평등은 힘든 싸움을 겪고 항상 패배자가 될 것 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평등과 번영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있다는 사상을 거부하기만 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이미 평등과 번영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상은 파산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훨씬 낮은 불평등을 가진 국가에 비해 경제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위해서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가치와 일치하며 모든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평등과 지속 가능한 성장 간에 조화를 이루게 합니다.

이 길을 더욱 많이 여행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경제의 근본적 구조를 다루고자 한다면 우리는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가 그 구조를 깊이 있게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뉴딜정책은 미국에 급격한 정도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쉽게 간주되었지만, 그것은 국내 노동자들과 농장 노동자들을 기본적인 노동 보호 정책의 범위 밖으로 방치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유산입니다.

그래서 미국 경제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부문인 보육 노동과 서비스 노동에 저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제껏 힘든 일자리들은 대체로 여성들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에 저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유색인종들이 다른 인종에 비해 감옥과 교도소에 오랜 기간 갇혀 있는 것처럼 빈곤이 유색인종의 지역사회에 집중이 된다는 걸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만약 우리가 불법 이민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불공정한 의존성을 정면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대부분 아프리카 미국인 및 라틴계의 수백만 노동자들은 그들의 지위와 이력들 때문에 초과착취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빈곤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보수주의자들은 희생자를 비난하는 것을 중지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개인들이 사회적 안전망 또는 교육 그리고 기술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빈곤으로부터 구출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중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초과 이익을 위해서 저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미국의 대량 빈곤을 초래하며 이것이 미국 노동시장에 있어서 규칙이자 한편으로는 규칙의 결여라는 걸 직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일자리들 열 개중에 여덟 개가 서비스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미국 고용 성장의 현실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많은 저임금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들은 더 높은 직업 기술들을 원하고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소득 학생들과 유색인종 학생들에게 직업 유동성을 줄 수 있도록 그들의 대학 학위에 대한 접근을 개선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194년대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저임금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중산층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우리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미국 빈곤 문제의 80%는 하나의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노동시장은 붕괴되었고 너무 적은 일자리들과 그리고 고된 노동에 비해 불공정한 임금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빈곤정책은 넉넉한 임금을 지불하는 일자리입니다.

좋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맞아 만약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일자리를 가진다면 우리는 가난해지지 않을 거야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사실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서 약 80%까지 빈곤을 줄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임금은 생산성 향상을 따라 잡을 수 있게 올라야만 합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당신의 회사에 투자 했는지 상관없이, 비용을 절감한다는 것 때문에 자신들은 보너스를 포함해서 남 다른 대우들을 유지한 채로 최고경영자가 어떤 것을 가지고서 사라져 버릴지라도 당신은 그저 노동을 하기만 해야 하는 구조를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런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수백만의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성과 유색인종이 그 체제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59년부터 1973년에 이르기까지, 경제 성장과 빈곤율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관관계는 70년대에 깨져 버렸습니다. 만약 그것들이 유지되어 왔더라면 1986년에 미국에서 빈곤은 없어 졌을 것이며 그 이래로도 계속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생산성과 보조를 맞추어 왔다면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시간당 17달러를(편집자 주 : 환율 1100기준 18,700원) 받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하더라도 시간당 17달러의 최저임금은 풀타임 노동자에게 연봉 3만4천 달러의 수입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연방 빈곤선 이상 수입이며 오늘날 최저임금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두 배 이상 입니다.
우리는 시애틀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시애틀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지난 1999년에 WTO반대 시위로 인하여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상징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영향은 2015~2016년 시애틀 지역의 최저임금을 32% 인상 시키는 힘이 되었다.)

지역사회 단체들과 노동조합 그리고 시민 활동가들, 지역사회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들은 다 같이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를 지지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저소득계급과 중간계급 가족들이 보다 더 많은 경제적 안전과 지출할 수 있는 수입을 가졌을 때 지역경제가 강력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결과로 인하여 저임금 노동자들은 29억 달러의 인상분을 집으로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도미노 피자 노동자인 크리스탈 톰프슨의 경우를 들자면 그는 5년 동안이나 그 일을 해왔지만 여전히 최저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임금 인상이란 그녀의 아들이 밖에서 자전거를 탈수 있는 보다 나은 이웃지역으로 이사를 할 수 있으며 더 이상은 소파에서 잠을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 그녀는 만약 시간당 15달러를 받는다면 좀 더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임금을 올리고 생산성 성장에 맞게 임금을 동반성장 시키는 게임의 새로운 규칙들을 통해서 일자리를 보상 받는 나라로 새로운 사회 계약을 구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 계약은 단지 돈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힘을 구축해 가는 것이며 투쟁하는 외침에 관련된 것입니다. 패스트푸드, 월마트, 세차장, 레스토랑, 소매점들 그리고 다른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들을 대변해야 하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위해서 투쟁해야 하며 고용주와 교섭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가져야 합니다.
이 해법이 미국에서 빈곤 해결을 위한 게임 체인저가 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지금 임금이 생산성과 맞추어 진다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음은 너무 오랫동안 참아온 사람들을 위해 임금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빈곤은 단지 경제적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여성의 권리문제이자 인종정의에 관한 문제입니다. 최저임금 아래에 놓인 세 명중에 두 명이 여성입니다. 그리고 그 중 42%가 유색인종입니다.
우리는 여성들이 동일 직무에 동일 임금을 받을 때 성공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산한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좌천되는 걸 중지시켜야 하며 그들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그리고 저렴한 보육원에 보내기 위해서 괴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41%의 ‘미혼모’ 가정은 빈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보육과 서비스 부문들에서 그들 노동에 대한 보상을 극적으로 증가 시켜야 할 것을 요구 합니다. 여성들은 그들의 성별 때문에 빈곤에 갇혀 있습니다. 반면 너무나 많은 남성들은 – 현저하게 아프리칸 미국인과 라틴계 – 그들이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빈곤에 처해 있습니다.

2008년에 10명의 수감자들 중에 6명이, 단지 미국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거나 라틴계 입니다. 그들이 사회로 복귀했을 때 고용을 위한 선택권은 참담합니다. 고용에서 소외된 이러한 사람들 모두를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은 개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웃들 그리고 우리 경제에 재난입니다.

최종적인 단계는 고임금이 지불되는 완전고용입니다. 지금 당장은 일자리 하나마다 세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노동시장은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고용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업률을 4% 아래로 낮출 수 있고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50년대와 60년대 실업률을 낮추었고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다시 그것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경제에 천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긴급하게 수리를 해야 하는 도로들, 교량들 그리고 공항들 같은 부서져 버린 사회간접자본을 고치기 위하여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무실과 가정을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개조 할 수 있고 사람들을 일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재생에너지에 투자함으로서 일자리들을 늘려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과 노인들을 돌보는데 투자할 수 있고 복지산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미국에 이익이 되는 진정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공적, 사적 부문들이 함께 일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4% 아래로 떨어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추측해 보겠습니다. “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세 가지 단계를 이행한다면 즉 생산성에 걸맞게 시간당 17달러로 임금을 인상하고 유색인종과 여성 노동자의 평등을 가로 막는 구조적 장애물을 해체시키며 완전고용을 달성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장에 해를 끼치거나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을 상처주지 않을 수 있는 걸까요?”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완전고용과 고임금을 위한 압력은 서로를 강화시킵니다. 임금이 올라가고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서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낮추면서 우리는 임금 인상에 대한 압력을 가하고 노동자들에게 매력적인 혜택들을 창출 합니다.

이러한 높은 최저 임금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보장은 80%이상 빈곤율을 낮추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지속가능하며 공정한 성장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 단계를 수행해야 합니다. 빈곤선을 벗어난 극빈층 4천7백만 명의 사람들 중 3천 9백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선 이상으로 향상시키고 빈곤선의 가장자리에 있는 수 천만 명 사람들의 경제적 안정성을 향상함으로서 우리는 빈곤율을 80%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급격한 도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우리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지금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빈곤층과 우리들 사이에는 단지 한끝차이만 있습니다. 우리 전체 경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층에 있는 1/3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을 때 우리 모두는 승리하게 됩니다.

전국적으로 운동의 불꽃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당 15달러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패스트푸드 노동자들로부터 전국에 걸쳐 많은 성공적인 노력들과 시애틀에서의 커다란 승리까지 저임금노동자들은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위해서 함께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은 쟁취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노동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개인적 삶을 보다 나아지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전체 경제를 보다 나아지게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운동을 통해서 미국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회적 운동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15년 전에 이 나라에서 결혼이 평등하다거나 서류미비 이민자의 시민권이 정치적 논쟁의 중심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 아니라 시기상의 문제입니다.

그런 운동 중 한가지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또 다른 사회적 운동의 참가자로서 나는 불의에 의해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의한 리더십이 변화를 위한 에너지를 창출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승리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회부문들로부터 지지를 얻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오늘 아침에 제가 당신에게 이 나라의 빈곤을 다루는 긴급한 운동에 동참할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함께합시다. 우리는50여 년 간 이어져 온 소모적이며 부실한 논쟁에서 탈피해서 평등과 공정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경제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여객기를 타고 집으로 가기 위해 며칠 동안 아스펜을 떠날 때 공항에서 샌드위치를 만드는 여성, 화장실을 청소 하는 관리인, 당신의 수화물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는 수화물 운반원을 다만 몇 분만이라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의 삶과 수백만 이상의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세 가지 간단한 단계들을 수행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원문출처 http://communitychange.org/can-really-something-poverty-america/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전선109호]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마라 - 5월 광주항쟁

[전선 104호] 2018년 하반기 총파업 총력투쟁 승리를 위하여...

[전선102호] 한반도의 봄을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