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14호]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전교조 해고자 투쟁의 의미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전교조 해고자 투쟁의 의미

김진 (전교조, 해고노동자)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에서 출발한 전교조

며칠 전 수능을 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는 기사를 보며, 한참을 먹먹한 마음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교육은 어떤 노동자를 길러내기 위해 아직도 ‘경쟁’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보다 ‘공정’하다는 입시는 청소년들의 죽음과 불평등한 현실을 막을 수는 있는 것인지. 전교조 창립의 계기가 되었던 일도 바로 이러한 청소년들의 죽음 때문이었다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왜 이런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전교조의 시작이었다는 바로 그 선언, 죽어간 목숨들에 대해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교사들의 선언, 바로 ‘교육민주화 선언’의 한 구절을 다시 읽어보았다.
“학생들과 함께 진실을 추구해야하는 우리 교사들은 오늘의 참담한 교육현실을 지켜보며 가슴뜯었다. 영원한 민족사 앞에 그 책임의 일단을 회피할 수 없음을 통감하게 된 우리는 더 이상 강요된 침묵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우리 교사들을 믿고 따르는 학생들의 올곧은 시선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방관자로 남아있는 우리를 더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그리고 더 설명하지 않아도 여전히 우리는 부끄럽다!

무거운 역사의 빚을 진 전교조

1998년 노사정위원회는 민주노총 1기 지도부가 잠정적으로 동의한 ‘노사정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간의 공정한 고통 분담, 노동계의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수용, 교원노조의 허용,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이었다. 이 노사정간의 합의안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후 총파업 등의 투쟁이 유실되면서 외환위기 극복을 명목으로 자본에게 제공된 정리해고제는, 노동자들을 해고의 광풍 속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이 되었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우리 주변에서 계속되고 있다. 전교조는 그 다음 해인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합법화되었다. 교원의 반쪽짜리 단결권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맞바꿔진 셈이다.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전교조가 비록 바란 것은 아닐지라도 다른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빚을 졌다는 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노조다움으로 당당히 지켜낸 전교조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투쟁이 6년을 넘겼다. 89년 창립 이후 전교조는 법내노조였던 기간보다 법외노조 기간이 더 긴 노동조합이 되었다. 아마 박근혜 정권의 노림수는, 전교조에게 해고자를 내치라는 요구를 했을 때, 전교조가 이를 선택하면 부당한 요구에 굴복한 것이니, 이를 길들이기의 기회로 삼았을 것이고, 만약 해고자를 내치지 않으면 법외노조가 되어 조합원들이 줄고, 영향력도 줄어들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되어도 박근혜 정권에게는 불리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박근혜 정권의 규약시정명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전교조 내부에서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해고자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일을 부당하다고 여겼고 규약시정명령을 단호히 거부했다. 전교조 조합원의 노조다운 선택이 역사를 바꿨다. 그리고 민주노조를 지켰다. 그 결과는 전교조의 자부심이 되었고, 이는 6년이 넘는 투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법외노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전교조 투쟁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날의 선택은 계속 곱씹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지금 투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의 선택은 전교조 투쟁의 목적이 단순히 법내로 들어가겠다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법내노조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면 규약을 바꿨으면 될 일이고, 이는 지금도 언제든 열려있는 일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다시 전교조 합법화 시기를 연상시키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려하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ILO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면서 관련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역시 ILO핵심협약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개악안이고, 교원-공무원의 노동3권 역시 보장할 의사가 없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의 간판은 달 수 있게 하면서, 실제 노동조합의 일은 하지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제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 투쟁은 노동개악 저지 투쟁과 만나야 한다. 이와 함께 온전한 노동3권 쟁취를 위한 교원노조법 폐기투쟁으로 나아가야한다.

다시 머리띠를 묶는 이유!

이런 상황에서 전교조 해고자들은 10월 21일 고용노동부장관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고용노동청을 점거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와 함께 노동개악 저지를 요구하며 8박 9일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근근히 이어오던 법외노조 취소 투쟁의 새로운 불씨를 당기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11월 19일 해고자들은 다시 한번 머리띠를 동여매고 앞으로 나아가려 한다. 우리 교육 현실에 침묵했던 부끄러움과 성찰에서 시작한 첫 마음을 지켜내기 위해서다. 다른 노동자들에게 진 역사의 빚을 다시 만드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노조다운 선택으로 당당히 민주노조를 지켜낸 조합원들의 마음을 지키고 하나로 모아내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전교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가 고용노동청에 있을 때 냈던 광고 문구를 옮겨본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풀겠다고 노동개악에 눈감지 않겠습니다.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라 합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투쟁으로, 우리 손으로 진정한 노동존중 만들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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