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14호] 남미의 변혁적 전투와 볼리비아 쿠데타 반대 투쟁

남미의 변혁적 전투와 볼리비아 쿠데타 반대 투쟁

안준호 노동전선 경기회원


1. 다시 시작된 남미의 혁명적 분위기

2018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남미 좌파진영의 반격은 아르헨티나, 에콰도르를 거쳐 칠레에서 거대하게 일어났다. 원자재 시장이 불황으로 빠진 2015년부터 시작된 남미 좌파블록의 해체는 2017년에 정점을 찍었다. 남미 (극)우파들은 남미의 진보적 성과들을 하나 둘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장기불황으로 계속되는 민중의 고통을 우파세력들과 남미 자본은 해결할 생각이 없었고 당연히 민중들의 분노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친미 정책, 낮은 임금과 연금, 통제되지 않는 물가, 계속되는 민영화 등 민중들의 생존에 타격을 주는 조치들은 민중들의 자존심과 생존권을 위협하였고 2018년부터 민중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제도혁명당 아래에서 오랫동안 부패와 양극화에 시달렸던 멕시코에서 분노한 민중의 지지를 받은 오브라도르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기점으로 아르헨티나의 반(反) IMF 투쟁, 에콰도르의 유가 보조금 철폐 반대 투쟁, 칠레의 생존권/개헌 투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IMF에 나라를 팔아먹은 마크리 우파정권에 분노하여 마크리 정부에 대한 반정부 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결국 민간연금 회사를 국유화 한 경험이 있는 페론주의 좌파들이 재집권하였으며, 에콰도르는 수도를 3일 동안 민중들이 점거하면서 배신의 정치가 레닌 모레노를 굴복시켰다. 모레노 정권이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겠다는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을 펼치자 그 동안 21세기 사회주의에 익숙해 있던 에콰도르 민중 입장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콰도르 민중의 위대한 투쟁은 레닌 모레노에게 보조금 폐지 철회를 하도록 압박하였고 레닌 모레노 정권은 항복하고 철회하였다. 현재는 투쟁 당시 끌려간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을 주장하며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칠레 민중들은 지하철 요금 30원 인상에 폭발하여 우파 정권 피네라 정권에 대항하는 반정부 투쟁을 계시하였다. 피노체트 정권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자본 천국 노동 지옥의 현장에서 살아가던 칠레민중이 그저 지하철 요금 30원 올랐다고 나라를 뒤집었겠는가? 그동안 쌓이고 쌓여온 불만과 분노가 그것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다. 지하철 개찰구를 점거하는 걸로 시작된 칠레 민중들의 저항은 더더욱 커져 갔다. 우파 피녜라 정권은 초기에는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초기 시위부터 실탄을 발포하면서 사태를 강제로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우파 정권의 긴축정책에 분노하고 지친 민중들은 계속 항쟁하였고 결국 피녜라 정권은 지하철 요금인상을 철회할 뿐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연금 인상, 부유세 신설, 의료비용 지원 등 긴축완화책을 제시하면서 시위대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칠레 민중은 이미 피노체트 시절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현 체제에서 일시적인 임금 인상과 복지 개선으로는 지금의 빈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헌법은 피노체트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자본독재를 위한 헌법이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칠레 민중들은 피노체트 시절에 만들어진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공공연금과 공공의료보험을 보장하는 새 헌법을 만들 것을 요구하였다. 계속되는 투쟁에 피녜라 정권은 결국 칠레 민중들의 투쟁에 굴복하였고 개헌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칠레 국회는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국민투표를 내년 4월에 열겠다고 합의하였다. 칠레 민중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피노체트의 큰 유산을 역사 속으로 영원히 보내 버렸다. 남미 우파들은 다시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참고로 칠레 민중들의 투쟁에 칠레 공산당과 신좌파 칠레 광역전선이 큰 영향을 끼쳤다. 제헌의회 소집과 공공의료보험과 연금제도, 노동시간 주 40시간으로 단축 등은 이 두 정당의 공약이었다.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민주적 전위” 역할을 한 셈이다.

2. 볼리비아 반(反)혁명 쿠데타와 그에 대한 저항

남미 우파들과 자본은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칠레 민중들의 저력에 대해 반격을 시도하였다. 바로 21세기 사회주의의 두 축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를 타격하는 것이었다. 베네수엘라는 고립되었고, 볼리비아는 쿠데타를 조장하였다. 대선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명분을 들어 노동조합 조합원과 사회주의 대중당 당원, 전혀 상관없는 지자체 단체장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난동을 피웠다. 미주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대선이 조작되었으니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며, 마크 와이즈브롯 같은 미국 학자들조차 감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OAS는 미국이 중남미를 감시하고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꼭두각시 기구이다. 실제로 OAS는 칠레와 에콰도르 정부가 민중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였을 때는 침묵하였고,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같은 파시스트들과 협력하고 있다. 중립적이지 않는 조직의 발표를 어찌 믿어야 하는가? 게다가 나중에 막상 재검표 이후 결과는 이전 결과가 유의미한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는게 들어났다. 그런데 에보 모랄레스는 순진하게도, 감사를 받아들였고 재선거를 하기로 하였다. 그 때를 기점으로 군과 경찰은 모랄레스에게 사퇴를 종용하였다. 무효가 된 것은 당선자를 뽑는 선거였지, 이미 대통령이었고 임기가 남아있던 모랄레스의 대통령 지위가 아니었다. 군경이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엄연히 쿠데타다. 피노체트처럼 탱크를 끌고 오지 않았을 뿐 연성 쿠데타로서 그를 끌어내린 것이다. 결국 모랄레스는 사퇴하였으며 이렇게 21세기 사회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던 볼리비아의 미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볼리비아 민중들 특히 인구의 60%를 차지하는 볼리비아 원주민들은 이러한 쿠데타 시도에 순응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랄레스가 사임했던 10일 이후 우파와 군부에 대한 강경한 저항투쟁을 시작하였다. 볼리비아를 방문한 미국인 기자는 “이렇게 화가 난 시위대는 처음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왜 화가 났는가? 첫째로 “야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우파와 경찰들이 원주민들의 상징인 “위팔라”를 불태웠다는 것이다. 위팔라는 원주민 저항운동과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깃발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헌법을 바꾸면서 위팔라를 볼리비아의 공동국기로 지정하였다. “야권”과 경찰이 이 깃발을 찢고 불태우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철저한 인종주의가 내포되어 있는 행동이다. 불태워진 위팔라를 본 원주민들은 모랄레스와 함께 자신들의 정체성까지도 부정당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현재 우파를 이루고 있는 인사들은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없다. 모랄레스 사임 이후 의회 과반의 지지를 받지도 않고서 임시 대통령을 참칭하고 있는 자니네 아녜스도 과거 2013년도 쯤 트위터에서 “나는 볼리비아의 사탄 원주민 의식이 없는 꿈을 꾼다. 도시는 인디언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들은 높은 평원이나 차코로 가야한다!” 라고 아주 대단한 인종주의를 뽐냈던 인사이다.
둘째로 지금 모랄레스를 밀어내고 권력을 차지한 세력들이 전혀 자격이 없고 파시즘적 집단이라는 것이다. 자니네 아녜스는 애초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인사이다. 의회에서 당시 아녜스 부의장의 대통령직 승계를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다수 여당 사회주의운동(MAS) 의원들이 출석하지 않아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아녜스 부의장은 여당 의원들 없이 취임을 강행했다. 민주적 절차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권력을 찬탈한 ‘참주’인 사람이다.
“야권” 인사인 카를로스 메사도 마찬가지로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인사이다. 부패혐의가 존재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가스 국유화 정책을 사실상 사보타주하며 시간을 끌다가 반정부 투쟁으로 쫓겨났던 인물이다.


<볼리비아 원주민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위팔라>

<반(反) 모랄레스 시위를 주도했던 카마초(사진 속 오른쪽)와 연계된 조직 산타 크루즈 유스 유니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더 그레이존의 트위터 글이다. 산타 크루즈 유니언은 가톨릭 극우주의로 알려진 집단이다.>

가장 충격적인인 모랄레스를 몰아냈던 세력들 중 파시스트 집단이 존재했고 존재도 모잘라 그들의 소속원들이 반(反) 모랄레스 시위를 조직하고 지도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대중당 당원들과 노조원들을 구타하고 공격했던 자들도 이들이며, 현재 이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취재하러 볼리비아로 온 기자들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고 있다. 최근에 아르헨티나가 좌파로 권력이 넘어간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한다. 뿐 만 아니라 이들의 우두머리 페르난도 카마초는 백만장자 집안 출신이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이들 세력의 권력 찬탈을 인정하였다.

셋째로 우파 세력들이 에보 모랄레스 정권 동안 진행해온 진보적 정책들을 폐기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원주민들을 거리로 모이게 만들었다. 이들의 걱정은 절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남미 좌파블록이 붕괴되고 나서 남미 우파들이 어떠한 짓을 하였는가? 기존의 복지정책을 해체하고 공공요금을 인상하고 긴축정책을 펼지 자본 천국 노동자 지옥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가? 옆 나라 칠레에서 민중들이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것을 지켜본 볼리비아 원주민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쿠데타 우익 세력의 집권을 방조하겠는가? 모랄레스 시기 빈곤율은 38%(2006)에서 17%(2018)로 줄어들었다. 그동안 천대받아왔던 원주민, 여성, 청년들에게 정치적 참여의 문을 대폭 열었다. 외세에게 수탈당하던 천연자원들을 국유화하여 그 생산물의 결과를 민중들에게 분배하였다. 최근에는 무상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쳤다. 원주민들은 이 정책을 방어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실제로 우파 세력들은 볼리비아의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고속도로를 봉쇄하였고, 그들의 수도는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모랄레스가 소속되었고 의회 과반을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 대중당은 새로운 상원의장을 뽑았다. 그리고 새로 뽑힌 상원의장은 자신이 진짜 임시 대통령임을 선언하고 있다. 양 세력의 본격적인 싸움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3. 우리는 남미의 투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남미의 변혁적 투쟁과 볼리비아 쿠데타 반대 투쟁을 보면서 2가지를 깨달을 수 있다.

첫째, 변혁은 절대 사회적 합의나 국회의원들의 협상 같은 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칠레의 투쟁은 전민항쟁이었으며, 어떠한 타협책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갔다는 점을 봐야 한다. 우리의 투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노란조끼 투쟁이 그 강력한 전투성과 대규모의 자발성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상이 철회되고 마크롱 정권의 회유책이 집행되자 모래성처럼 흩어져버렸듯이 최근의 투쟁들은 쉽게 모이고 쉽게 흩어지는 양상이 커지고 있다. 이는 국제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칠레의 투쟁은 회유책에 흔들리지 않고 요구 조건을 근본적인 부분으로 확대하면서 매우 장기적으로 운동을 지속시켰고, 승리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민중에게 방향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민주적 전위” 역할을 하는 정당이나 조직들이 꼭 존재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언제나 우파들의 역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파들은 끊임없이 진보적 성과들을 붕괴시키기 위해 공격해 들어온다. 한국에 태극기 부대가 존재하듯이 남미에서도 수많은 반동 파시즘 단체가 존재하고 이들은 정당한 민중적 요구를 계승한 정권들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찬탈해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는 비단 볼리비아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존”을 강요하는 의회 민주주의 체제에서 파시스트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며, 설령 그들이 겉으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집권하자마자 민주적 권리들을 파괴하였고, 최종적으로 그들은 의회 민주주의 제도마저 파괴하여 노동자 농민 민중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억압했다. 결국 “노동자 국가”로 나아가야만 저들의 준동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남미 좌파는 남미 우파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는 미국에 의해 심심하면 침탈당하는 의회 민주주의 제도를 방어하는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존재한다. 노동자 국가로 나아가려면 지금 당장의 민주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과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또한 여러 가지 악법들이 도사리고 있다. 아직 민주주의 투쟁이 완료되었다고 하기에는 한국의 상황은 낭만적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민주주의는 언제나 극우파들이 역공을 가하는 통로로서 이용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볼리비아 같은 경우 저들의 존재를 내버려두었다가 이렇게 공격당한 것이다.
글의 마지막으로 필자는 한국 진보좌파 진영의 볼리비아에 대한 무관심에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볼리비아 모랄레스 정권은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성과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진보적인 성과를 이루고 있던 국가였다. 민족/인종의 갈등을 불식시키고, 성평등을 이루며, 천연자원을 국유화 하여 공적 통제를 하였다. 방어되어야 할 국가가 풍전등화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명서 한 장 나오지 않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제나 서구 좌파를 따라하기 좋아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영국 노동당 제레미 코빈과 그 논란 많은 샌더스 의원이 모랄레스와 원주민들을 방어하는 모습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지 의문을 가진다. 진보 언론을 표방하는 메이저 언론들조차 모랄레스의 명예와 원주민들의 투쟁을 축소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동지들께 부디 볼리비아에 대한 연대를 해주길 부탁드린다. 노동전선의 운영진에게도 부탁드린다. 볼리비아 쿠데타를 규탄하는 자리를 마련해주길 부탁드린다. 무관심은 극우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파시스트여 물러나라! 볼리비아 원주민에게 승리를!

Venceremos! 결국 우리는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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