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13호] 노동자가 쟁취해야 할 3대 과제

노동자가 쟁취해야 할 3대 과제


김영규(인하대 명예교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사슬을 풀어 노자가 평등해 지는 세계의 건설에 매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노동자가 자본가의 사슬도 풀어야 하겠지만 평등 이전에 노동자의 자유를 가두는 감옥(악법과 탄압)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자를 가두는 대표적인 악법과 제도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이에 따라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누구는 정부가 제안하는 ‘협력주의(코오퍼러리즘)’인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도 노동이 자유와 권리를 가져 비로소 협상할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그것도 없는데 노사협력이 가능하겠는가?

이에 따라 노동자의 우선 과제는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국내외적으로 요구되는 노동의 자유 즉 노동기본권을 기필코 쟁취하는 일이다. 이는 예컨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언급한 바 있는 ILO의 핵심협약부터 도입(비준)해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과제를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정리코자 한다. 노동의 기본권에는 당연히 인간답게 사는 경제적 조건인 ‘임금’에 대한 논의도 별도의 과제로 삼아야 하지만 선진경제의 과제인 ‘평등주의 실현’(제2과제)에 묶어 논의하기로 한다.

제 1 과제: 노동악법 폐기

노사정 협력은 촛불항쟁으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주장하니까 종래보다 더욱 그럴듯하게 긍정적으로 들린다. 물론 민주노총이 참여하면 노동자 대중도 적극 지지할 것이라는 전제는 있다. 협력주의(코오프러티즘) 사고가 갖는 문제는 노동자가 마주하는 상대가 공익위원인 정부도 있지만 주적인 자본가 측 위원도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잊거나 그것을 가볍게 인식하는데 있다. 그렇다면 과거로 돌아가 보자. 노동자계급은 민주노총이 주도한 1996-7년 총파업을 통해 당시 안기부법·노동법 개악을 저지한 경험이 있다. 당시 국무총리가 김영삼 대통령의 명을 받아 민주노총과 진보좌파진영이 연대 투쟁하던 명동성당까지 찾아와 항복했다. 그해 3월 이후에 국회가 몇 차례 소집되었고 악법들을 폐기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총파업의 위력이 살아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총파업이 끝난 후 1997년 여름부터 경제상황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했다. 재벌기업의 수출하락에 이어 미국의 월스트리트 금융자본이 달러의 유동성을 규제해 이른바 ‘외환위기’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 결과 10월 이후에 IMF 구제금융을 받아 외환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고 달러의 수급이 조정되어 위기는 진정되었다. 이 해에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이듬해(1998년) 3월 국회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악법이 이루어졌다. 그것이 바로 정리해고법이다(김영규, IMF 공황: 개혁과 개방, 인하대출판부, 1998).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파견법과 비정규직 관련법이 입법화되는 등 한국의 노동자는 자본가계급이 만든 악법의 감옥에 단단히 갇히게 된다. 이에 노동자는 가장 대표적인 노동악법부터 먼저 폐기시켜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총파업으로 부터 배운 정치경제교육은 노동자가 파업이란 기본권의 행사로 자본과 정부로 하여금 노동악법을 폐기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당시 독점재벌들이 파업에 손을 든 정부의 방침에 일단 복종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이 전부일 수 없으며 반드시 그것대로 진행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본과 정권이 악법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본의 이윤이 줄어들어 종래처럼 축적과 재생산을 달성할 수 없는 경기불황이 원인일 수도 있다.(노동자 유념) 더구나 한국이 선진경제로 부상하면서 세계적 경제위기에 노출되고 나아가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임금 격차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크게 벌어져 사회적 불안이 확대되어 경기불황 못지않게 자본과 정부가 예의 주시해야 할 상황이다.(자본가 유념)

그러므로 정부는 경기침체와 사회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노동3권 등 기본권 보장을 우선적으로 달성하는 이른바 계급타협 정책을 펴야 하지만 지금의 문재인 정권도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지금 노동자가 폐지와 개정을 바라는 법률(정리해고법, 파견법 등)을 적시해서는 이것들을 폐기시키는 투쟁이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

제 2 과제: 평등주의 실현

노동악법 폐기를 위한 제반 투쟁은 결국 노동자시민이 추구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나 차별없이 평등해야 한다’는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 자본이 부당하게 빼앗아 가는데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합당하다는 조치야 말로 사회 정의에 배치되는 만큼 이런 악법(이윤축적 법) 폐기야 말로 인간 평등의 가치와 일치한다. 이는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곳곳에서 심지어 자본가계급의 대표들이 모인 스위스의 다보스포럼(매년 1월 개최)에서도 경제의 성장보다 평등을 위한 분배가 금세기의 주요한 가치로 제기되고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지난 세기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을 대체하는 21세기 노동자계급 해방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평등세상을 여는 다양한 투쟁에 노동자계급이 단결하고 여기에 양식있는 시민 세력이 연대하면 혁명은 성공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형평분배 투쟁에 대해 유산계급인 부르주아지의 대응이 궁금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태생적 본질은 자본의 축적, 이윤의 확대, 재산의 증대, 부와 소득의 증가다. 이런 본질에 반하는 어떤 법적 강제 조치도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만약 자본가의 소득과 재산의 증대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나 시민이 부유세를 도입하거나 세율을 증가시킬 것을 국민청원 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우선 청와대부터 당장 거절할 것이기 때문에 이 청원이 국회까지 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회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기구이며 민주시민이 평등을 추구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의회란 부와 권력을 가진 기득권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기관이라는 것을 확고히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을 배출하는 정당인데 이런 정당들을 보수우파 정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본주의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정치집단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국가와 정치까지도 기득권층의 대표인 자본가계급이 장악하고 있다. 어떤 나라든 노동자민중의 대표가 정치세력으로 국회에 진출하거나 과반을 넘기기에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평등을 실현하는 법률이 통과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 당장 노동자계급(진보좌파 세력)이 국회에서 자신의 권익을 위한 법률을 통과시키고자 한다면 보수우파 기득권 세력과의 정치적 타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우리가 이미 촛불투쟁의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한국에서 노동자시민의 투쟁 결과 치룬 선거행사로 정부를 바꾼다 한들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 등 정치세력까지 당장 바꿀 수는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 제국에서 민주주의가 갖는 민낯이기 때문에 지금의 정치체제로서는 노동자가 염원하는 평등의 세상이 하나의 꿈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노동자는 인간 해방의 진실이고 정의인 평등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주인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이라도 건전한 시민세력과 연대해 인권과 평등을 제고하는 입법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이 일부 채택하고 있는 기득권층에 대한 세제강화와 빈민계층을 위한 복지강화도 동시에 도입해야 한다. 우선 가진 자의 재산상속을 줄이고 그들의 소득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유형의 국세와 지방세에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 또한 없는 자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건인 주거, 교육, 의료 등을 정부가 무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계급계층 간 평등 실천을 위해 가진 자와 없는 자에 대한 실현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대책은 국회의 정당 구성부터 개혁하고 나아가 정당 간 평등정책을 추구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 이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제 3 과제: 국제연대 공고

위 두 개의 과제와 임무들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 투쟁이다. 지난 7월 1일 이후 일본 정부가 우리에게 가한 수출규제 보복조치에 대해 정부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의하고 행동에 나서고 있다.(지난 8.15 광복절 경축사) 이에 따라 국민들도 토착왜구 척결, 친일잔재 청산, 민족주의 정신을 앞세워 일본제품 불매운동, 일본관광 취소 사태 등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제품 불매나 관광 취소 등 소비운동이 양국간 지속되어온 역사적 교류관계를 볼 때 그렇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제품 소비거부 시민운동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 일제의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제적 연대 확산을 모색하고 있다. 나아가 외교부는 일본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것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출된 방사능 물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처리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적절히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운동이다. 이 문제를 일본 정부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것은 내년에 도쿄에서 개최되는 올림픽 경기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를 보이콧하는 나라가 지금 없고 향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이 운동의 한계라는 점도 분명하다.(예컨대, 한국 배구는 2020 도쿄올림픽을 위한 예선전을 버젓이 치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노총과 일본노총 젠노렌(全勞聯 전국노동조합총연합회)과의 연대다. 지난 8.15 광복절을 맞아 젠노렌 의장이 민주노총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양대 노총은 아베정권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 한일정부의 반노동정책에 대항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국제적 연대야 말로 일본의 수출규제를 자유무역 정책으로 바꿀 수 있는 근본적 계기가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국제적 연대투쟁으로 번지게 되면 자본주의의 착취와 탄압이 어떤 특정 국가의 정책으로 채택되는 것을 공동으로 저지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는 물론 동북아지역에서 과거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쟁 반대, 핵 반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과 북한 노총도 당연히 참가해 계급의 투쟁과 개혁(혁명)을 논의하고 동북아 지역 정권을 노동자 민주국가로 개편하는데 분명 일조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는 동북아를 넘어 아시아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선결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미국에 종속된 하위 파트너로 베트남전에 군대를 파견해 지역 인민들을 학살한 전례가 있다. 또한 지금 한국의 삼성 등 재벌들이 베트남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는 현실을 눈감고 있을 수는 없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베트남 노총과 긴밀히 협력해 한국정부의 사과와 배상 등 전후 뒤처리를 감당하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는 나라마다 민족·민중해방을 선도해 그것이 국제질서와 세계 평화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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