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110호] 유럽 노란조끼 운동, 그 의의와 한계, 시사점

유럽 노란조끼 운동, 그 의의와 한계, 시사점


안준호(학생활동가)



1. 전개과정과 궁극적 원인


1) 프랑스 민중의 분노

 노란조끼 운동은 11월 17일 28만 여명의 프랑스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크롱 정부는 유류세를 경유 23%, 휘발유는 15%나 인상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명분은 화석연료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위선이었다. 이미 마크롱 정부의 부유세 사실상 폐지, 부자감세, 재정긴축, 노동개악, 권위주의적 정치 등 지배계급을 위한 정치에 불만이 쌓여가던 프랑스 민중들은 이 유류세를 계기로 분노가 폭발하여 항쟁에 들어서게 되었다. 실제로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8000달러에 달하지만, 근로자의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1700유로(219만원)에 지나지 않으며 청년실업률도 25%에 달하고 있다". (배명복,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이대로는 못 살겠다”…생활고 허덕이는 민초들의 반란”, 중앙일보, 2019.01.17)

어떤 상황에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하는 마크롱 정부의 태도는 이러한 항쟁에 기름을 부어넣은 꼴이 되었다. 이는 중산층들까지도 돌아서게 만들었으며 노란조끼운동은 유럽 역사상 가장 큰 민중저항운동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노란조끼운동의 큰 특징은 지도부 없이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운동이다. 일부 극우성향 인물들이 섞여 들어왔다고 하면서 이 운동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노란조끼운동의 주요 요구는 유류세 인상 폐지, 최저임금 인상, 부자증세, 직접민주주의 강화 등 진보적, 민중적 요구였으며 그 기조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유류세 인상 폐지에서 시작된 운동은 마크롱 정부의 퇴진으로 까지 구호가 급진화 되었고 이는 마크롱 정부를 최대 위기로 몰아넣었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마크롱 정부는 12월 4일 6개월 간 유류세 인상을 유예하겠다는 말을 하며 양보하는 척 하였으나 프랑스 민중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주요 요구의 관철을 위해 계속 투쟁하려고 하자 결국 하루 뒤 유류세 인상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어떻게든 분노의 불꽃을 진화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미 주요 요구가 유류세 인상 폐지에서 정권 퇴진으로 불이 옮겨간 상태였고 마크롱의 교육정책에 불만을 느낀 고등학생들까지 12월 8일에 거리투쟁에 합류하였다. 프랑스 경찰이 고등학생들을 제압하는 과정이 동영상으로 유포되자 시위대들은 더욱 분노하였다. 심지어 시위대를 진압해야하는 경찰들마저 못해먹겠다면서 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을 하는 등 전민항쟁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자 결국 마크롱은 12월 11일 부유세 부활을 제외한 “어느 각도로 보나 정당한 운동”이라는 아부를 하면서 저소득층의 연금에 대한 세금 인상을 중지하는 동시에 비과세 연말 보너스를 지급하라고 권고하겠다고 발표했으며, 한 달 최저 임금을 2019년부터 100 유로로 바로 인상시키겠다고 약속하며 민중들의 분노를 잠재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효과가 없자 그는 새해가 되자마자 말을 뒤집으면서 덜 일하고 더 받을 수 없다는 망발을 떠들게 된다. 그리고 복면을 쓰는 것을 불법으로 하고 집회를 제한하려고 하는 등 민주적 권리들을 제한하려는 시도를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시키고 있다.

2) 유럽과 주변국가로 퍼진 노란조끼운동

 노란 조끼운동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독일 등 서유럽 뿐 아니라 동유럽과 북유럽, 중동 국가들로 퍼져 나갔다. 이집트에서는 바로 노란조끼를 입는 거 자체를 막아버리면서 운동이 결집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하였다. 세르비아에서는 부패한 정부를 타도하려는 정권퇴진 운동으로 번졌으며, 독일에서도 노동시간 단축 등을 외치며 노란조끼 운동을 진행하였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 극우정권의 인종차별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중심으로 노란조끼운동을 진행하였다. 중요한 것은 노란조끼 운동이 다른 나라에서도 반정부 투쟁, 민주주의와 생존권 투쟁에서 시작하여 계급적 운동으로 격상되는 모습을 작든 크든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노란조끼운동을 참칭하며 이주민 추방을 외치는 극우세력의 시위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모두 그렇게 보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3) 기만적인 사회적 대토론과 노란조끼운동의 하강국면

 마크롱은 노란조끼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전형적인 채찍과 당근정책이었다. 마크롱은 사회적 대토론을 하자고 제안한다. 노란조끼 운동에서 나온 내용들을 평화적으로 토론하자고 하였으며 결국 이 말은 민중들을 토론의 형식으로 각개격파 하겠다는 구상이며 시간을 벌겠다는 구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2달 동안 사회적 대토론이 열리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부자들은 충분히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둥의 이야기로 분노의 민심을 교란시켰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자 그는 4월 담화를 통해 소득세 인하와 엘리트주의의 상징인 국립행정학교(그랑제꼴)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 또 지방정부 동의 없이 학교나 병원을 폐쇄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유세 부활은 불가하며 노동시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그 계급적 본질에서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었다. 그러나 효과는 있었다. 그의 지지율은 회복되었고 노란조끼운동은 내부에서 분열되고 있었다. 분명 운동이 하강국면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다.

경제상황도 그를 도와주고 있다. 프랑스는 현재 5월 16일 기준으로 2009년 이후 최저 실업률 8.7%을 찍었다. 해외영토를 제외하면 8.4%가 된다.

마크롱의 담화에 노란조끼운동 진영은 그의 기만을 비판하면서 다시 한 번 전열을 정비해 메이데이에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열었다. 특히 노르트람 화재에 기부된 부자들의 기부금 액수를 보면서 프랑스에서 다시 분노의 여론이 조성된 것도 한 몫 했다. 현재 노란조끼운동은 그동안 운동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던 노조조직들이 이 운동으로 들어오면서 운동은 좀 더 정치적 색채를 확실히 하고 있다. 이후 노란조끼 운동이 어떻게 진행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4) 노란조끼 운동의 궁극적인 원인

 전개과정에서 프랑스에서 일어난 직접적 원인과 전개과정을 다뤘다. 이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궁극적인 원인으로서 현 유럽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한다.

궁극적인 원인은 90년 이후 28년 간 쌓여 온 양극화이며 이 양극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착취와 집적과 집중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복지축소, 민영화, 임금 삭감, 노동시간 개악 등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한 정책들은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더 쉽게 가능해졌다. 그리고 소련을 포함한 구 동구권 붕괴 후 전 세계적으로 운동세력들이 갈팡지팡하며 정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노동계급이 공격당하였다. 또한 당 내 재급진화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선봉으로 등장하여 노동계급을 분열시켜버린 것도 매우 컸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지표로서 덴마크의 지니계수가 0.29에 도달했다는 덴마크 통계청의 통계를 인용한 덴마크 노총의 발표는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화 되어가고 있는 지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사례로 북유럽의 대표적인 항공사 SAS항공의 조종사 노조의 주요 요구가 SAS가 경영 위기를 맞았던 2012년 때 삭감한 임금을 여타 유럽 항공사 조종사 수준으로 인상해달라는 것이었다. 북유럽도 이정도 수준이면 다른 국가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2. 의의와 한계


 노란조끼운동의 가장 큰 의의는 2가지다. 하나는 민중들이 분노로 자발적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을, 즉 전민항쟁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운동이 쇠퇴하면서 전민항쟁 가능성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의회주의에 투항하는 진보세력이 적지 않았다. “의회를 부정하기 위해 의회를 이용하라”는 레닌의 전략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기성정당으로 투항하는 흐름들은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노란조끼운동은 그러한 투항을 비웃듯이 전민항쟁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나머지 하나는 현재 프랑스 민중을 포함한 유럽, 중동의 민중들이 현재 사회모순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부터, 부유세 부활, 대기업 증세, 소상공인 감세, 직접 민주주의의 강화 등의 요구는 매우 계급적, 민중적 요구이며 이런 요구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전민항쟁과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는 주택 국유화 운동으로 번져 나가고 있으며 사적 소유에 대한 민중들의 인식이 다시 과학화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계를 지적하자면 역시나 두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지도부가 없는 대중적 자발성으로 일어난 운동은 그 자발성이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다. 한 번 방향을 잃으면 쉽게 모래알처럼 무너져 버린다. 실제로 노란조끼 시위는 자칭 지도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창당하면서 의회로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마크롱의 담화로 중산층들이 이탈하는 등 중간에 하강국면을 맞이하였다. 운동의 구심점을 잡아주고 흔들리지 않게 해주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전위’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결국 운동의 전성기에 정권퇴진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2016-2017 한국 촛불항쟁이 그 급진성과 요구가 프랑스의 노라조끼운동보다 약했는데도 불구하고 정권퇴진에 성공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과도내각이니 뭐니 하면서 기만책을 폈던 국회가 결국 12월에 민중의 요구에 굴복하여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던 한국 같은 일은 프랑스 마크롱 정부 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3. 한국 운동에 주는 시사점


한국의 사회운동 계급운동에 주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 대중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 되 그들을 계속 끊임없이 움직이게 할 구심점이 필요 하다. 이것이 노란조끼운동이 한국에 주는 교훈이자 시사점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한 노란조끼운동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단점들은 한국 운동에서도 충분히 나타할 수 있거나 나타나고 있다. 구심점을 잡고 운동의 지속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민주노총을 포함한 진보적 세력들의 역량강화 특히 사상적 구심점을 키우기 위한 학습의 반복이 필요하다.

둘, 서구의 운동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보면 안 된다. 노란조끼 운동은 분명 의의를 따질 만한 위대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서구의 운동만을 숭상하며 한국의 운동들의 성과를 얕잡아 보거나 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으며 타국의 운동을 평가하는 자세에는 한국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중점이 잡혀 있어야 한다. 프랑스 민중이 못한 걸 우리는 하지 않았던가?

참고

배명복,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이대로는 못 살겠다”…생활고 허덕이는 민초들의 반란”, 중앙일보, 2019.01.17 수정, 2019.05.19 확인.
김덕식, “마크롱 "소득세 내리겠다"…`그랑제콜` 없애 특권층 타파”, 매일경제, 2019.04.26수정, 2019.05.20 확인.
김용래, “프랑스 1분기 실업률 8.7%…10년 만에 최저”, 연합뉴스, 2019.05.16 수정, 2019.05.21 확인.
안상욱, “덴마크 소득 격차 ‘사상 최대’”, NAKED DENMARK, 2019.05.09 수정, 2019.05.21 확인.
안상욱, “SAS “곧 정상 운항 재개”…조종사 노조와 협상 성공”, NAKED DENMARK, 2019.05.03 수정, 2019.05.21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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